체게바라의볼리비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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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벼룩시장 조회 11회 작성일 2021-06-24 20:03:5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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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뭐하던 사람인지 알고 입는거임? #효기심22

#체게바라 #피델카스트로 #쿠바 #효기심

길가다가 이사람 얼굴 박혀있는 T입은 사람 정말 많이보셨을겁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1. 체 게바라
1926년 생 1967년 사망
체 게바라입니다.
그 유명한 쿠바의 영웅이자 혁명의 상징으로 불리는 사람이죠

본명이 에르네스토 게바라인데
Che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흔히 붙히는 감탄사 중 하나
아르헨티나 출신이었던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애칭으로 체 게바라로 불리게 됩니다

쿠바는 사실 상 독립했어도 미국의 영향권이었습니다.
플랫수정안 : 쿠바는 미국외의 어떤 나라에게도 이양될 수 없고, 권리도 제한되며,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도 미국에 양도된다.
플랫수정안을 친미주의자였던 쿠바 초대대통령 토마스 에스트라다 팔마가 이미 다 만들어놨었기 때문이죠(자막X)
미국은 쿠바에서 설탕공급을 오지게 잘 빨아받습니다.

그러다가
이사람이 또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라몬 그라우(Ramón Grau)
100일만에
풀헨시오 바티스타 사진
1933년 바티스타가 또 쿠데타를 해서 또 뒤집어 엎습니다.
바지사장 대통령 몇명 앉혀놓고 7년 나라운영 해먹다가
1940년부터는는 지가 대통령을 해먹습니다
1944년까지는 바티스타도 쿠바에서 친미주의자로서 미국뒷빨까지 받으면서 잘해먹었는데

물론 바티스타가 집권했을 때 쿠바는 설탕오지게 팔아먹어서
나라꼴이 잘 돌아가긴합니다

문제는
쿠바에서 사탕수수만 오지게 만들어서 설탕만 팔아먹어서
나라경제의 90%가 설탕에 의존하게 됩니다.
설탕가격이 올라갔을 때는 어마무시한 호황이었겠지만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설탕만으로 나라를 이끌 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양반 임기 끝인 4년뒤였던 1944년

대통령선거에서 반미주의자였던 라몬 그라우가 당선됩니다.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깨끗한 정치인이었는데


이미 11년동안 바티스타새끼가 다말아먹고 부패가 이미 만연해진 사회를 바꾸기는 택도 없었죠.
프리오 소카라스(Carlos Prío Socarrás)
그 다음에 1948년에는 프리오 소카라스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는데
이인간은 레알 개쓰레기처럼 지돈만 오지게 해쳐먹고 4년을 보냅니다
그렇게 쿠바 사람들은

1952년 6월
1952년 6월 다음 대통령선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 선거에 과거 11년 해먹다가 선거떨어지고 짜져있던 바티스타가 다시 출마하려고 대기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52년 6월이 아닌 1952년 3월
바티스타 사진 디졸브로 그대로 띄워주면서
대통령선거 3달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바티스타새끼가 또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왜냐구요?
이길 자신 없어서 ㅎ

지가 선거나가서 이길자신이 없었거든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국민들은
차라리 그 전 대통령이었던 프리오 소카라스 이인간이 부패의 아이콘이라서
차라리 과거에 설탕값 오지게 올랐을 때 잠시 잘살았던 시절의 대통령 바티스타가
쿠데타한게 차라리 났다 라는 생각으로 그의 쿠데타를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정권을 쳐잡더니 2만명 가까히를 숙청하죠.
거기에 심각한 빈부격차는 계속되었고 쿠바의 문맹률은 40%대를 머뭅니다.

게다가
1950년대의 쿠바는 바티스타 새끼 집안과
미국이 반띵해서 쿠바를 나눠먹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958년 미국기업들은 쿠바 서비스사업 부분의 전체 90%를 차지하고 있었고
미국기업들이 쿠바 설탕산업의 40퍼센트
게다가 경작 가능한 쿠바 농지의 75%를 미국인이 가지고 있게됩니다.
게다가 미국의 거대 기업들
쿠바의 담배, 과일, 운송, 전기, 전신 및 은행 등도 거의다 장악하게 되었죠.
이 모든건 미국 빨아먹으면서 정권만 이어가려고했던 바티스타찡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쿠바 총 인구 600만 중에 50만명이 실업상태.
나라에서 초등교육하는 어린이도 전체의 3분의1밖에 안됐고
문맹률은 날이갈수록 늘어 43%에 이르렀죠.
결국 바티스타의 쿠데타정권에 대해서 쿠바사람들은 오지게 불만이 차있었죠.

그래서 드디어 나옵니다.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뜬금없이 쿠바 사람도 아닌 체게바라가 여기 끼게되는데
1953년 바티스타정권한테 엿먹으라며 피델 카스트로가 몬카다병영을 습격하는데
그 습격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교도소에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국민들이 피델 카스트로 석방시키라고 난리난리쳐서
바티스타가 석방시켜주자마자 피델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튑니다

이때
피델 카스트로가 체 게 바라를 만납니다.

ㅎㅇ 피델
나 체게바라라고해 ㅎ
우리 혁명할래?

우선 체 게바라는 젊은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된 이후에 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오도바이타고 남미대륙을 여행합니다.
이분 사진이 나이먹었을 때 밖에 없어서 그냥 감안하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때 체게바라는 남미 오토바이타고 돌아다니면서
빈부격차로 인해 사탕수수캐고 커피농장에서 쳐맞고 바나나 농장들에서 노예취급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게다가 1953년 과테말라에서 하코보 아르벤스가 좌파정권을 잡고 사회주의 세탁기에 나라집어넣고 돌려놓고 있었는데
1954년 미국 CIA의 지원을 받고 과테말라에서 좌파정권이 개박살이 나고
친미정권이 세워집니다

그것을 목격하고 체게바라는 미국을 오지게 싫어하게되죠.
아니면 체게바라 사진에서 노려보는 사진으로 미국국기보게끔 해도될듯
이때부터 남에 나라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미국으로 부터 이 세계를 지키겠다는 신념이 생깁니다.
그 신념이 사회에 정말 필요한 신념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의대를 졸업했지만,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사회의 병을 고치는 혁명가가 되겠다며 혁명가가 된 체게바라.
그것을 보고 대뜸 여행하다 말고 갑자기 과테말라에서 혁명을 합니다.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말이죠.
그러다가 실패로 끝나면서 과테말라 쿠데타 신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서
멕시코로 튑니다.

그렇게
방금전에 쿠바에서 멕시코로 튄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만나면서
그 유명한 쿠바 혁명을 준비합니다.

처음에 100명도 안되는 인원으로 개삽질하다가
정말 놀랍게도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 기다리고 원하고 있던 쿠바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서 어마무시하게 기세가 성장하면서
결국 1959년 1월
쿠바 수도 하바나를 장악하면서 바티스타를 쿠바에서 발로 빵차버립니다

그런데
이양반들이 처음부터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도 아니었죠.
그런데 중요한건 둘다 어마무시한 반미주의자였습니다.
물론 이양반들의 1950년대 당시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은
미국덕분에 잘나가던 국가들이 개박살 나거나
플렌테이션 농업으로 오지게 생산해도 쥐꼬리만큼 돈받고 설탕이나 바나나 미국에 퍼다줘야하는 상황
이런 것을 목격하면서 반미주의자가 된거였죠.
일단은 피델 카스트로 체게바라가 쿠바에 오고나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쿠바가 시작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봉쇄가 시작되면서 쿠바는 설탕과 바나나만 오지게 팔아야 됐었는데
팔 곳이 사라지자 나라경제가 개박살이 납니다.
게다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쿠바는
반미
경제박살
남은건 소련

소련에 빌붙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공산주의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죠

문제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는 국가의 경제나 국정을 운영할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체게바라는 갑자기 의사였던 양반이 쿠바 국립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이 됩니다.

당연히 산업화 금융정책을 제대로 알리가 없었던 체게바라
게다가 중국과 소련간의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도 충돌이 생기면서 그 유명한 1962년 미국 케네디 정권 때의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생기고
소련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미국 소련 냉전시기에 쿠바를 오지게 잘 이용해먹으려고 합니다.
소련 본토까지 오기 이전에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오지게 가까운 위치에 있던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 기지설치를 허용하려고 했던거죠.
물론 결국엔 서로 쫄았던 미국 케네디와 소련 흐루쇼프서기장이 간만 보다가 끝났지만 말이죠.
쿠바 미사일 위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을 보던 체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가 너무 소련 똥X만 빠느라 정신팔려있는 것으로 보여서
결국 1965년 알제리에서 소련이 제국주의적 착취 공범자라며 미국이나 똑같은 새끼들이라고 오지게 욕을 합니다.
체게바라소리에 개빡쳤던 당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은
쿠바에서 체게바라가 자꾸 설치게 내버려두면 쿠바에 아무 것도 경제원조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게되었죠.
체게바라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나라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쿠바에서 그것이 실패하자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다시 한번 콩고를 자기의 이상적인 나라로 만들려고 했지만
아프리가 특유의 부패와 답도 없는 미신믿는 짓거리들을 보고
결국 1966년 볼리비아로 들어가게되었죠.
아무튼 볼리비아 공산당이랑 손잡고 다시 한번 새로운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또 혁명
혁명을 또 하러갑니다
그러나 쿠바에서도 소련에게 찍혀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했는데
당시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볼리비아에서 공산당혁명을 일으키려던 볼리비아 공산당도
아직 나라도 제대로 뒤집지도 못한 상태에서 체게바라때문에 소련한테 찍히기 싫어서
체게바라를 그냥 버려버립니다.
그러다보니 CIA와 내통하고 있던 볼리비아 친미정부.
당시에 미국은 CIA와 네이비씰까지 투입해서
체게바라잡으려고 난리난리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체게바라는 볼리비아 정글속에서 11개월동안 도망치다가
결국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생포되어서 비밀리에 처형되었죠.

여러분의 그 티에 박혀있는 면상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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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석 : 혁명의문제점
어찌됐건 그시대상에 적응하고있던 민중의 적어도 절반에게는 오히려 고통을 주게돼고 혁명의주체세력은
변질되어 배신하게된다
진정 국민을 위한혁명이라면 몇몇 야망가가아닌 국민이중심이 돼야하고 그속도의 완만함으로 적응시켜야함
듣기달달하고 멌있는말로 한방논리 펼치는건 선동에불과함
프랑스는 100년동안 혁명했다
그건 국민이원하고 필요한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인것이다
대혁명은 그렇게 서서히오다
마지막에 쓰나미가되타
이이 : 체도전
공자 : 하도 역사쌤이 체게바라 체게바라하기에 귀에 박힘ㅋㅋㅋ
베텔게우스 : 우리로 따지면 몽골인이 감정기때 일제한테 무장독립 한거다ㅋㅋㅋㅋ애초에 공산주의자 아니였고 냉전시대 그나마 소련편 들고 소련욕했는뎈ㅋㅋㅋㅋ 대가리가 없으신건지 영상을 끝까지 안본건지? 역시 세계사 지@미한테 배웠길래 저러나?ㅋ두부에손상이 온건 아닌지?ㅋㅋㅋㅋ하긴 夫모가 닮아서 아직도 편가르기 k정치하노?ㅋㅋㅋㅋㅋㅋㅋㅋ
조봉팔 : 어차피 쿠바가 남아잇엇더라면~~
혁명동지엿던
카스트로한테 제거(처형) 당할 운명 ,
알아서
콩고로,볼리비아로 튄거다,ㅋㅋ

체 게바라 사망 50주년... "새로운 체 게바라 고대" / YTN

[앵커]
내일(9일)은 쿠바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사망 50주년 일입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혁명가가 숨진 지 반 세기가 지난 지금 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임수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체 게바라 숨진 지 이미 50주년이 됐지만 쿠바에서 그는 늘 현재형입니다.

티셔츠에서부터 자동차 번호판까지 게바라는 늘 쿠바인들의 곁에 남아있습니다.

쿠바에 사는 게바라의 큰딸은 아버지 관련 서적을 보급하며 유지를 잇고 있습니다.

반면 아들 에르네스토는 오토바이를 이용해 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 체 게바라 아들 : 수교 일 년쯤보다 지금은 미국과의 관계가 더 나빠졌고 국제정세가 혼란해 관광업이 불황이라 사정이 어렵습니다.]

1928년 아르헨티나 출생인 체 게바라는 1956년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로 건너가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킵니다.

10년 뒤인 1966년 볼리비아로 건너간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위해 무장 게릴라 투쟁을 벌입니다.

이듬해 10월 총상을 입고 체포된 체 게바라는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체 게바라의 동생 후안 마틴은 형은 사회적 불의에 대항해 평생 투쟁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날로 악화되는 지금 새로운 체 게바라가 절실한 때라고 강조합니다.

[후안 마틴 게바라 / 동생 : 새로운 젊은 남녀 체 게바라가 나와야 합니다. 새로운 길을 쟁취하도록 이끌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체 게바라가 숨진 볼리비아와 사후 그의 유해가 안장된 쿠바에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추모행사가 성대하게 펼쳐질 예정입니다.

YTN 임수근[sgli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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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less soul : 더 이상 위대한 사람들을 들먹이지 말고 이념과 사상을 위해 사신
위인들은 한 역사의 인물로서 그 뜻과 명예를 존중하여 훼손말고 보존해
주셨으면 한다.추악한 물질의 자본주의 세계에선 통하지도 않고
그 분을 욕 되게만 할 뿐이다.
문수연 : 쿠바를 망친 체게바라를 왜이레 띄워주냐?
명바이 : 나중에 김머중이 이 인물처럼 1980년 광주에서 폭동과 공산혁명을 이르킴
BLACK DRAGON & ANGRY CAT : 체 게바라가 쿠바의 바리스타 독재를 끝낸 인물이란 점은 왜 빼놓나? 쿠바는 체 게바라가 혁명 일으키기 이전에도 개씹 후진국이였다. 혁명 이후 경제적 후퇴는 미국이 미리 쿠바를 고사 시킬려고 손 쓴 것도 있고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였기에 그랬을 뿐 적어도 다수 민중들에게 있어선 바리스타 독재 시절보다 삶은 100배는 더 나았다.
이선욱 : 알고 지껄이자 수연아 ㅂㅅ이니ㅡㅡㅡ

체 게바라 사망 50주년... "새로운 체 게바라 고대" / YTN

[앵커]
내일(9일)은 쿠바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사망 50주년 일입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혁명가가 숨진 지 반 세기가 지난 지금 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임수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체 게바라 숨진 지 이미 50주년이 됐지만 쿠바에서 그는 늘 현재형입니다.

티셔츠에서부터 자동차 번호판까지 게바라는 늘 쿠바인들의 곁에 남아있습니다.

쿠바에 사는 게바라의 큰딸은 아버지 관련 서적을 보급하며 유지를 잇고 있습니다.

반면 아들 에르네스토는 오토바이를 이용해 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 체 게바라 아들 : 수교 일 년쯤보다 지금은 미국과의 관계가 더 나빠졌고 국제정세가 혼란해 관광업이 불황이라 사정이 어렵습니다.]

1928년 아르헨티나 출생인 체 게바라는 1956년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로 건너가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킵니다.

10년 뒤인 1966년 볼리비아로 건너간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위해 무장 게릴라 투쟁을 벌입니다.

이듬해 10월 총상을 입고 체포된 체 게바라는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체 게바라의 동생 후안 마틴은 형은 사회적 불의에 대항해 평생 투쟁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날로 악화되는 지금 새로운 체 게바라가 절실한 때라고 강조합니다.

[후안 마틴 게바라 / 동생 : 새로운 젊은 남녀 체 게바라가 나와야 합니다. 새로운 길을 쟁취하도록 이끌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체 게바라가 숨진 볼리비아와 사후 그의 유해가 안장된 쿠바에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추모행사가 성대하게 펼쳐질 예정입니다.

YTN 임수근[sgli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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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link : 소름끼치며 역겹다 공산주의자이자 수백만 학살자
하세요ᄋ안녕 : 동행 와우.. 진짜인가 보네 정치비판에 미친 사람들만 쓰는 단어만 골라서 쓰네
link :  @하세요ᄋ안녕 
골때린 넘이네 ㅋㅋㅋ
넌 개인이오 ㅋㅋㅋㅋ
하세요ᄋ안녕 : 동행 즐은 또 언제적 거야 ㅠㅠㅠㅠ세대차이
안들게 할려면 노력 좀 하고 씁시당
link :  @하세요ᄋ안녕 
조선족 아님 대깨문이네 으~~~ 소름끼쪄 즐~

... 

#체게바라의볼리비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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